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라셀 군도 (문단 편집) == 영토 분쟁 == ||<-2> {{{#fff 파라셀 군도 영토 분쟁}}} || || [[실효 지배|{{{#fff 실효 지배}}}]] || [include(틀:국기, 국명=중국)] || || {{{#fff 영유권 주장 }}} || [include(틀:국기, 국명=대만)][br][include(틀:국기, 국명=베트남)] || 역사적으로는 중국 어민들이 정박지로 사용했던 곳이었다. [[청불전쟁]] 이후 프랑스의 간섭이 심화되자 1902년 청나라 시기 관리를 보내 자국의 일부임을 선언하는 비석을 세운 것이 근대적 편입의 시작이다. 그러나 1933년 [[프랑스령 인도차이나]]가 일방적으로 편입을 선언하면서 영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.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종식되고 [[동남아시아]]에 힘의 공백이 발생하게 되면서 이들 지역에 대한 영유권 분쟁이 시작되었다. 1946년 [[중화민국]]이 탈환을 시도하였으나 [[프랑스]]가 지켜냈고, 이후 [[남베트남]]에 넘어갔다. 그러나 두 개의 중국과 베트남 간의 영토 분쟁 하에 있었다.[* 양안 모두 중화의 전통적인 영역이라 보았는지 섬이 월남 영토가 되자 [[장제스]]가 타진하기로 '''[[중공|북경]]이 여력이 안되면 [[중화민국|우리]]가 대신 탈환하겠다.''' 라고 할 정도였다.] [[베트남 전쟁]] 와중인 [[1974년]] 1월 [[중국 인민해방군]]이 군도 전체를 점령 후 지금도 중국, 베트남, 대만간 영토 분쟁 중이다. 다만 대만의 경우 [[스카버러 암초]]나 [[스프래틀리 군도]] 정도에만 군사력을 행사하기에 사실상 중국과 베트남 간의 분쟁이라 할 수 있다. [[파일:external/imgnews.naver.net/GYH2017021000110004401_P2_20170210172101696.jpg|width=450]] 이 와중에 중국군은 군도 곳곳에 활주로와 항구 등 군사기지 등을 건설해 요새화 한 상태이고, [[https://m.news.naver.com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3&aid=0008924004|2018년엔 봄바이 암초에도 감시용 탐지기를 설치했다.]] 이에 [[베트남]]은 중월전쟁으로 시작된 중국의 위협에 대항하고자 과거의 적수였던 [[미국]]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